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 또 죽었다. 차마 말하기도 끔찍하게, 2.5톤 화물차에 눌려서 사람이 죽었다.
2026년 4월 20일. CU BGF 자본의 악랄한 탄압에 파업으로 맞서던 화물연대본부 서광석 동지가 숨졌다. 편의점 물류 노동자에게 끔찍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던 CU BGF에 맞선 파업투쟁이었다. 자본은 어느 때처럼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물류를 줄인다고 협박하고, 노동자의 생계를 담보로 삼았다. 공권력 역시 어느 때처럼 자본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를 밀어내고, 원활한 물류를 담보하기 위해 대체차량의 투입을 경호했다. 그들에게는, 대체 차량을 막아 파업대오를 사수해야 한다는, 여기에서 파업투쟁마저 밀리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노동자의 절박한 투쟁이, 그 죽음이 그저 부차적인 것이었으리라.
서광석 동지가 돌아가시지 않을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노동자라고 인정하면 되었던 것이다. 노동자로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사용자와 교섭하고, 필요할 때 파업할 수 있었으면 되는 것이다. 자본의 추가적인 이윤을 위해, 어떠한 노동자를 제멋대로 ‘특수고용’이라 이름붙이고 ‘개인 사업자’라 칭하는 것. 그 자의적 행태를 국가와 법의 이름으로 합법화해주는 것이 아니었다면, 오늘 벌어졌을 것은 동지의 죽음이 아니라, 언제나 있는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였을지도 모르겠다.
다가오는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이재명 정부는 이 날이 소위 ‘다시 찾은 노동절’이라며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있다. 하지만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이름만 바꾼다고 무슨 소용인가. 정작 누군가는 이재명 정부의 공적 폭력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데.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법적으로는 ‘노동자’가 되지 못했는데. 결코 노동절을 ‘다시 찾’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니, 이 ‘다시 찾은 노동절’에, 민주노총의 양경수 위원장이 어울려주려 한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노동절 당일 이재명 정부의 관제행사에 참가하고, 그 자리를 빛내주실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양경수 위원장에 대해 마지막 남은 일말의 동지적 기대를 품어본다. 최소한, 어제까지 대통령과 노동절 관제행사를 치루어 “민주노총의 위상”을 올리겠다 마음먹었었다 할 지라도, 오늘 서광석 동지의 죽음 앞에서는 그 생각을 철회하였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양경수 위원장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말하는 120만 조합원 중 한명을 죽인 정권의 수괴, 이재명과 악수하고 웃음을 나누지는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는 국가와 자본에게 서광석 동지의 죽음에 책임지라고 하지 않겠다. 사람의 생명에 책임질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도무지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자본주의가 존재하고, 그 수호자로서 국가폭력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죽음이 무한하게 반복될 뿐임을 안다. 그렇기에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국가와 자본을 철폐할 때까지 투쟁을 결의할 뿐이다.
미국의 노동조합 활동가 조 힐은 국가의 탄압에 사형대로 걸어가면서, “추모하지 마라, 조직하라!”라는 유언을 남긴 바 있다. 우리 또한 서광석 동지의 죽음 앞에 서글프게 눈물흘릴 지언정, 추모하지는 않겠다. 더 큰 투쟁을 조직하고, 더 강고하게 맞서겠다.
2026년 4월 20일
자유공산주의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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