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의 한 복판에서 태어났다. 방역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던 시절, 각자의 위치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여서는 안된다는 소수의견을 주장하던 우리는 하나의 모임을 건설했고, <혁명적 아나키스트의 조직적 연대체>, <아나키스트 연대>라 자칭했다.
우리가 스스로를 <혁명적 아나키스트의 조직적 연대체>라 이른 데에는, 우리 내부에서 다음의 두 가지에 대한 공고한 합의가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하나. 우리는 대중의 직접행동이 아닌 의회주의적 · 대리주의적 행보를 보이는 “아나키즘”을 지양하였다. 우리에게 아나키즘은 피지배계급의 자기 해방의 이데올로기였고, 그 자기 해방을 위해 필요한 것은 사회복지를 강화하거나 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대중조직을 건설하고, 그 투쟁을 조직하며, 조직된 투쟁을 모아내는 과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 우리는 체제로부터의 개인적 도주를, 일부 영웅적 개인의 테러리즘을 찬미하는 “아나키즘”과 결별하고자 하였다. 우리에게 체제는 단호한 거부로 사라질 유령이 아니요, 개인적 투쟁이 흔들어 틈을 낼 수 있는 허접한 관념도 아니었다. 우리에게 체제는 공고한 물질이기에, 그 체제를 무너트릴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공고한 인민대중의 조직뿐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우리는 지난 5년간 누적하여온 현장에서의 경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우리를 재조직하여 <자유공산주의전선>을 건설한다.
이는 우리가 ‘아나키즘’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지난 5년간 조직을 세워내고, 운동의 원칙을 고민하고, 대중조직 속에서 대중과 관계맺고, 아나키스트 활동가들과 교류하고, 비(非) 아나키스트 활동과들과 교류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아나키즘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더욱 날카롭게 벼려내었다. 그 담금질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내어놓은 결론은,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이데올로기를 표현하기에 너무도 광범위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강령/노선을 재점검하고 다시 써내려가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이데올로기를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허울 좋은 ‘개인’의 해방이 아닌, 현존 체계 아래에서 억눌리고 고통받는 피지배계급의 자기해방을 목적으로 둔다. 우리는 개별 활동가들의 느슨한 연대가 아닌 정치조직을 기반으로한 투사적 활동가들의 이데올로기적/전술적/조직적 단결을 조직론으로 둔다. 우리는 평화로운 통합이 아닌 분열 속에서의 치열한 투쟁을 방법론으로 둔다. 우리는 ‘대중의 혁명적 자기완결성’에 기대어 대중이 스스로 떨쳐일어나는 것을 기다리기보다, 대중의 안에서 가장 혁명적인 대중의 일부로써 대중에게 가해지는 혁명적 추동력이 되기를 선택한다.
우리는 한국의 투쟁적 민주노조운동의 현장파 전통의 영향을 받아 자생한 좌파 이데올로기로서, 국제 아나키즘 운동에서 미하일 바쿠닌 - 에리코 말라테스타 - 네스토르 마흐노/디엘로 트루다의 노선과 겹침을 확인한다. 이는 현대의 ‘분파적’ 구분에 따라, 강령주의(Platformism)-정향아나키즘(Specific Anarchism)-에스페시피스무(Especifismo)와 그 결을 같이함을 의미한다. 또한, 해당 경향성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로써, 우리는 자유공산주의(Libertarian Communism)를 채택한다.
우리는 이 노선/강령을 통해 우리의 운동과 전략/전술을 구체화하고, 다른 운동의 노선과 스스로를 구분하려 한다.
아나키즘은 분열과 투쟁의 이데올로기다.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 모든 개인의 개별성을 최대한으로 존중하고, 그 개별성 속에서 “용인할 수 있는 다름”을 가진 자들끼리 조직을 건설하고, 그 조직이 자기 개별성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하여 다른 조직과 때로는 투쟁하고 때로는 논쟁하고 때로는 동맹하면서, 결과적으로 합의에 이르는 사회야말로 아나키즘이 그토록 갈망하는 바 아래로부터 건설된 탈중앙화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좌파”라고, 최소한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칭한다면, 통합과 단결을 이야기하지 말아달라. 스스로 더욱 날카롭게 분열하여 자신의 운동을 세워달라. 그렇게 세워진 여러분들의 운동과 우리의 운동은 서로 다르기에 서로 투쟁하겠지만, 사회적 필요에 따라 언제고 동맹하여 통일전선 아래에서 모이지 않겠는가. 이것이 아나키즘이 말하는 바 연방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강령은 하나의 독트린이 아니다. 모든 이들에게 정답이어야 하는 문건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사회혁명의 방법론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강령에 가해지는 모든 비판을 환영한다. 그 비판과, 그 비판에 맞서는 우리들의 투쟁이야말로, 우리의 운동과 우리의 이론을 더욱 날카로운 칼날로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칼날’이, 억압과 착취의 체제를 끊어내고 모든 이가 자유롭게 살아가는 해방을 이루어낼 우리의 무기가 되리라 믿는다.
세계 노동자의 사회혁명 만세!
2025년 여름,
자유공산주의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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