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반동 : 미하일 바쿠닌의 『독일에서의 반동』에 대한 한국적 해제

콘서트 오브 유럽.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의 불길이 지나간 뒤, 유럽의 왕정국가들이 서로를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조율하겠다고 선언한 반혁명적 질서였다. 그들이 말한 “화해”와 “평화”란, 다시는 혁명 따위가 구체제를 뒤흔들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공동의 결의였다.

유럽 각지의 구체제 수호자들에게 혁명은 진압의 대상이었다. 때로는 강경책을 썼고, 때로는 온건책을 썼다. 방식은 달라도 목적은 같았다. 혁명세력을 약화시키고, 질서를 다시 안정시키는 것.

프랑스에서는 7월 혁명 이후 부르주아적 입헌왕정이 수립되었고, 혁명의 에너지는 제한선거와 재산권 중심의 정치질서 안에 갇혔다. 독일에서는 민족주의와 결합한 자유주의, 그리고 혁명적 이데올로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검열과 포섭이 동시에 작동했다. 물론 밭에서 농노를 캐다 쓰던 러시아 땅에서는, 그런 자유주의적 타협조차 굳이 상정할 필요가 없었고.

유럽의 왕정국가들은 각자의 조건에 따라 저항세력과 그 이데올로기를 탄압하고, 포섭하고, 회유했다. 그 과정에서 한때 혁명세력이었던 이들, 혹은 혁명적 이데올로기의 주창자였던 이들 일부가 체제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 반동의 일원이 되었다.

『독일에서의 반동』에 등장하는 여러 분파가 바로 이 문제를 보여준다. 바쿠닌은 이 글에서 긍정성과 부정성의 대립을 통해 반동 세력을 두 흐름으로 나눈다. 하나는 순수한 반동파이고, 다른 하나는 타협주의적 반동파다. 순수한 반동파란, 현존 질서를 노골적으로 보존하려는 세력이다. 이들에게 동지와 적의 구분은 분명하다. 적은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자신들이 보존하려는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인 동시에 공동체의 자기의식을 규정하기 위해 필요한 부정적 타자다.

이들은 명백한 구체제의 수호자들이었다. 프랑스의 부르봉 복고파, 스페인의 카를리스타, 이탈리아반도의 친합스부르크 귀족들, 합스부르크 왕조와 로마노프 왕조가 그 예였다. 이들은 당대 유럽의 핵심 지배 세력이었고, 자신들이 지키려는 질서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완전한 의미의 반동주의자였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긍정성이란 곧 좋은 것, 혹은 지향해야 할 것을 넘어 이미 존재하는 질서, 곧 현존하는 국가, 제도, 안정,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을 의미한다. 동시에 부정성이란 곧 현존 질서의 내부모순을 드러내고, 그 질서에 흠을 내며, 그 틈을 폭로하는 힘이다. 부정성은 세계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며, 사물 안에 내재한 모순을 폭발시키는 계기다.

그렇기에 순수한 긍정성을 주장하던 반동주의자들은 당대 급진주의자들을 짓밟았다. 무력, 검열, 국가권력은 그들에게 긍정성을 수호하는 가장 적극적인 수단이었다. 부정성을 제거해야만 긍정성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압은 모순을 지우지 못했다. 오히려 드러냈다. 부정적인 것을 제거하려는 긍정성의 운동은 역설적으로 부정성의 존재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긍정성은 순수한 반동의 얼굴로만 나타나지 않았다. 그 내부에서는 타협적 반동주의자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긍정성도 부정성도 아닌,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간의 회색지대에 놓인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긍정성과 부정성 사이에 중립의 평지는 없다. 타협주의는 실제로 긍정성 안에 있으며, 부정성을 직접 제거하기보다 관리하고, 조정하고, 제도화한다.

바쿠닌이 『독일에서의 반동』을 쓸 당시, 프랑스에서는 오를레앙파의 진보파와 보수파가 체제 개혁을 말하고 있었다. 이들은 타협적 반동의 대표적 형상에 가까웠다. 독일에서도 적지 않은 자유주의자들이 프러시아를 “계몽된 군주정”으로 보았다. 이들은 프러시아 국가를 바탕으로 개혁을 이어가고, 그 힘으로 민족적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쿠닌은 순수한 반동보다 타협적 반동을 더 경계했다. 순수한 반동은 부정성을 적으로 삼는다. 반면 타협적 반동은 부정성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이해의 언어 속에서 부정성을 현존 질서의 갱신력으로 흡수한다. 타협주의가 위험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것은 부정성을 탄압하지 않고 봉합한다. 그래서 부정성을 주장하는 이들조차 그 안에서 힘을 잃기 쉽다.

실제로 1848년, 독일 전역의 혁명은 결국 처절하게 패배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왕권과 타협했고, 민족 통일이라는 과업은 혁명적 대중운동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 패배의 잔여 위에서 훗날 비스마르크가 등장했고, 독일의 통일은 혁명이 아니라 철혈의 통치로 완수되었다. 혁명운동은 체제 안으로 흡수되거나, 흩어지거나, 더 지하로 밀려났다.

바쿠닌의 이러한 분석은 19세기 초반 유럽의 특수한 정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19세기 독일을 바라보면서 파악한 것은 단순 빈 체제 아래의 반동적 분파 뿐만이 아니었다. 현존 질서가 어떻게 자신에게 적대적인 부정성을 탄압하고, 이해하며, 관리하며, 자기 갱신의 동력으로 흡수하는지, 그 구조를 파악했다. 그렇기에 『독일에서의 반동』은 과거 유럽의 반동을 설명하면서도,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반복되는 긍정과 부정의 충돌, 그리고 그 속에서 나타나는 포섭과 변화를 분석할 수 있게 한다. 이 점에서 바쿠닌의 분석은 현대 한국, 특히 87체제를 파악하는 데에도 유효하다.

한국의 87체제를 생각해보자.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체제에 저항하던 이들 상당수는 점차 체제 안으로 들어갔다. 노동자대투쟁과 96-97 총파업의 정신을 말하던 이들은 의회정치로 이동했고, 그중 상당수는 주류 양당정치 안으로 흡수되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저항은 교과서에 기록되었고, 국가는 스스로를 노동자를 보호하는 “정의로운 힘”으로 서술했다.

전태일 열사의 저항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을 자신의 몸과 함께 불태웠다. 이는 근로기준법이라도 준수하라는 외침인 동시에 근로기준법에만 기대야 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러나 국가는 그 저항마저 “모범적인 노동자”와 “권리를 요구한 시민”의 서사로 신화화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시간이 갈수록 안정된 질서로 굳어졌다. 마치 19세기 초반의 유럽처럼. 87체제는 콘서트 오브 코리아, 한국협조체제였다. 그러나 그 질서에도 균열은 있었다. 앞서 언급한 96-97 총파업이 그랬고, 2008년의 거대한 촛불이 그랬으며, 박근혜 국정농단 국면에서 다시 타오른 촛불 역시 그 균열의 한 형태였다. 이 사건들은 체제에 균열을 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균열은 반복해서 봉합되었다. 총파업은 노동의 제도화와 의회정치 속으로, 촛불은 “민주주의의 힘”이라는 복원 서사 속으로 흡수되었다.

2024년 12월, 그 균열은 마침내 파열음을 낸다. 체제를 수호하겠다는 가장 보수적인 정부가 그 수괴를 지키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 이에 맞서 대중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다.

그렇게 거리로 대중이 쏟아져 나와 저마다의 목소리를 외치던 탄핵광장은 무엇이었는가. 현존 체제라는 긍정성에 맞선 부정성이었는가. 아니다. 그것은 긍정성과 부정성이 뒤엉켜 혼재하는 혼돈의 장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광장은 가능성이었고, 동시에 함정이었다.

탄핵광장에는 부정성의 계기가 분명히 존재했다. 다양한 소수자들, 그리고 소수자의 위치를 자처한 이들이 수많은 깃발을 들고 등장했고, 기존 국가권력의 정당성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 또한 윤석열로 가시화된 순수 긍정성, 혹은 순수 반동주의의 권위가 자연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주장하기도 했다. 광장은 현존 질서의 내부모순을 드러낼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이 머무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탄핵광장은 결코 해방구도, 혁명적 부정성도 아니었다. 탄핵광장의 대중은 사회대개혁을 외쳤다. 수많은 깃발이 광장에 등장했고, 투쟁하는 이들에 대한 연대도 표명되었다. 전농과 민주노총, 여러 투쟁현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있었다. 그러나 광장은 거기까지였다. 그 에너지는 현존 질서를 찢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던 (혹은 망상하던) “정의로운 국가”의 복원으로 흘러갔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변화의 요구는 “정의로운 국가”라는 환상으로의 복원에 대한 요구일뿐이다. 사회대개혁이란 이들이 “원한다”고 생각한 정상성으로서의 국가를 되찾기 위한 일종의 선언이었다. 사회대개혁을 위해서는 투표를 잘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외쳤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여러 대중조직에게 지금에서야 “시민권”을 부여하자고 외쳐댔다. 온갖 진보주의적 수사가 광장을 맴돌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로 긍정성의 모습이었다. 윤석열에게 수호해야 할 것이 “자유대한민국”이었다면, 광장의 대중에게 회복되어야 할 것은 헌법질서가 작동하는 “민주공화국”이었다. 둘은 서로 적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자는 모두 현존체제의 완성을 최종 지평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같은 긍정성의 장 안에 있었다. 차이는 노골적인 반동인가, 세련된 타협적 민주주의인가에 있을 뿐이다.

19세기 유럽에서 순수한 반동과 타협적 반동이 서로 다른 얼굴로 같은 질서를 지켰듯, 탄핵광장에서도 노골적 반동과 세련된 민주주의는 서로 적대하면서도 동일한 국가적 지평을 공유했다. 그 지평의 가장 활동적인 태가 바로 “말벌”이라는 이름을 쓰는 시민 집단이라 하겠다.

이들은 광장시민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현장에 연대한다. 그들은 체제에 균열을 내는 정의로운 시민, 부정성을 담지한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이들은 더 문제적이다. 이들의 언어는 그 누구보다 정의롭다. 그렇기에 이들은 부정성을 담지하고 투쟁하는 이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합법과 “정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그들이 노동자의 “권리”와 시민적 “정의”를 더 급진적으로 외칠수록, 역설적으로 해방의 언어는 더 빠르게 사라진다. 그들의 급진성은 체제 바깥으로 향하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긍정성을 가장 열렬하게 승인하는 급진성이다. 이 점에서 말벌은 타협주의자와 닮아 보이지만, 오히려 더 순수한 긍정성의 형상에 가깝다. 타협주의자가 부정성을 절차와 개혁 속에 조정해 넣는다면, 말벌은 부정성을 민주공화국이라는 언어로 번역한다. 그들에게 투쟁은 체제를 넘어서는 사건이 아니라, 체제가 자기 이념에 걸맞게 작동해야 한다는 요구가 된다.

투쟁현장은 때로 그들의 기동성과 열정에 압도된다. 말벌시민들의 엄청난 행동력에 감탄한 이들이 그들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휘둘리는 장면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힘은 투쟁을 체제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투쟁을 시민적 정의와 합법성의 언어 안에 붙들어두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단순한 타협주의적 반동파로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들은 오히려 순수한 긍정파, 명백한 반동주의자에 가깝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테제를 너무나도 절실하게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테제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다가갈 때조차, 바로 그 테제에 기반하여 다가간다. 말벌에게 투쟁은 국가를 넘어서는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이게 나라냐"는, 국가가 정상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다.

대중은 그 자체로 완성된 혁명적 정치 주체가 아니다. 대중은 모순을 품은 장소이며, 부정성이 발생할 수 있는 그릇이다. 그러나 그 부정성이 실제로 혁명적 힘으로 전화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탄핵광장은 이 차이를 보여주었다. 그곳의 에너지는 체제를 찢을 수도 있었지만, 결국 체제의 가장 순수한 자기긍정으로 회수되었다. 그리고 말벌들은 바로 그 회수의 전위였으며, 지금도 그러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쿠닌이 『독일에서의 반동』에서 지적한 바를 그저 하나의 철학적 사변이자 당대에 국한된 정세분석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우리는 탄핵광장을 통해 대중이 그 자체로 부정도 긍정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는 대중의 일부가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 그 행동이 어떤 방향을 띠는가이다. 그것이 체제를 넘어서는 부정성이 아니라 체제를 더 완전하게 만들려는 긍정성으로 작동할 때, 부정성은 투쟁의 이름으로 긍정성 안에 편입된다.

이런 점에서 “역사는 결국 진보한다”거나, 대중에 대한 무한한 신뢰 속에서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붕괴할 것이다”라고 믿는 것은 급진적인 태도가 아니다. 모순은 저절로 혁명이 되지 않는다. 부정성은 자동으로 해방을 낳지 않는다. 탄핵광장은 모순이 드러난 순간에도 그것이 얼마든지 국가의 자기갱신으로 흡수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중에 대한 막연한 신뢰가 아니라, 부정성을 지키고 밀어붙이는 실천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대중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문제는 대중 속에서 발생한 부정성이 어떤 힘에 의해 포섭되고, 어떤 실천에 의해 보존되며, 어떤 방향으로 밀려나가는가이다. 대중의 자발성은 그 자체로 해방이 아니다. 그것은 해방의 가능성일 수도 있지만, 국가권력을 갱신하는 가장 열렬한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대중 속에 머물러야 하지만, 대중의 자발성이라는 신화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광장의 긍정성에 포섭되지 않는 부정성으로 남아야 한다. 정의로운 국가, 정상적인 민주공화국, 회복되어야 할 헌정질서라는 이름으로 봉합되는 모든 것을 다시 찢어야 한다. 그 찢김 속에서만 새로운 전망은 등장한다.

“파괴를 향한 열정은 창조적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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