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2026년 5월 18일, 대한민국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개최한다. 2026년 기념식의 슬로건은 『오월, 다시 광장을 품다』이다.
그리고 이렇게, 5월의 광주는 다시금 “광장”을 품는다.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광주를 “광장”이라 칭하였기 때문은 아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는 금남로 거리 위에서, 지금의 민주광장 위에서 존재했다. 그 광장 위에서 광주는 스스로를 해방했다. 오히려 5월 광주는, “다시” 광장을 품을 필요도 없이, “항상” 광장을 내포하고 존재한다. 그렇다면 2026년 오늘, 정부는 왜 광주에 다시 “광장”을 안기려 하는가.
현재의 정부는 스스로를 “광장”이 만든 정부라 자칭한다. 응원봉을 들고 나온 시민들이 윤석열의 내란을 막아내고 민주정부를 세워내었다는 “빛의 혁명”이 그들의 정치적 창세신화다. 그렇기에 정부가 주관하는 5월 광주의 기념식에서, 광주가 다시 광장을 품었다는 선언을 하는 것은, 5월 광주의 광장을 그들의 광장으로 대체하겠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오히려 “그들의 광장”이 5월의 광주를 품겠다는 의미가 된다고 하겠다.
하지만 시민들이 스스로 열어낸 광장이 아닌, 권력이 신성하게 관리하는 광장은 해방의 광장이 될 수 없다. 한국사에서 대중의 저항이 치솟을 때마다 대중이 점유하고 해방의 언어를 외쳐왔던 광화문 광장이나 시청 광장이, 그 대중의 저항을 이용해 정권을 잡은 자들의 손으로 “민주화의 성지”가 되고, 그 “성스러움”의 이름으로 정권의 허락이 없이는 집회를 개최할 수 없는 곳이 되는 역사적 과정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결국, 5월 광주가 “광장”을 품는 순간, 혹은 저들의 “광장”에 품기는 순간, 5월 광주는 그 해방적이었던 과거를 뒤로한 채, 체제에 포섭될 수밖에 없다.
해방광주 : 해방된 광주/해방하는 광주
우리가 80년 5월의 광주를 “해방광주”라 일컫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그 광주는 국가권력으로부터 해방된 광주였기 때문이다. 국가는 본질적으로 “폭력을 독점”하고 “사회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실제로는 지배계급을 위해 그 독점된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다. 그리고 5월의 광주가 보다 나은 삶을 요구하고, 그들을 억압하는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을 때, 국가는 본연의 폭력으로 광주를 탄압했다.
하지만 광주의 시민들은 그 폭력에 맞서, “국가의 안전보장”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폭력에 맞서 스스로의 방어를 조직했다. 투쟁대오의 배를 채운 것은 팔기 위해 마련한 주먹밥을 모두와 나눈 소상인들이었다. 자기의 생계유지 수단인 택시와 버스에 불을 붙여 계엄군에게로 돌진시킨 노동자들이었다. 인근지역을 순회하며 경찰서의 무기고를 접수한 것은 평범하게 공장에서 일하던 이들이었다.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자기 피를 나누었던 성매매 여성들이 있었다. 그 투쟁의 전선에 나아간 것은 적들이 만든 징병제와 예비군 편재를 해방의 힘으로 전용하여 전투의 대오를 형성한 광주의 인민들이었다.
해방광주의 해방은 누군가 높으신 분이 쥐어준 것이 아니었다. 광주 전남지역의 “진보적” 유지들은 광주의 투항을 주장했다. 호남을 대표한다는 정치인 김대중은 광주에서의 투쟁 동안 연금당한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소위 민주투사들은 광주 지역 운동권들의 씨가 마를 것을 걱정하며 숨기에 급급했다.
그렇기에 “해방된 광주”라는 말은 부적절하다. 5월 광주는 “해방하는 광주”였다. 국가가 독점하던 질서와 폭력에 대한 권한을, 민중의 분연한 투쟁으로 되찾아 마침내 스스로 해방한 광주였던 것이다.
장면 둘. 연세대학교 교정에 서있던 이한열 열사 추모비를 이한열 열사 기념비로 다시 세우던 날, 열사의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한열이가 왜 벌써 기념해야 될 사람이냐”
민중은 언제나 봉기를 내재하고 있다. 48년 4월의 제주에서. 60년 4월의 서울에서. 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80년 5월의 광주에서. 87년 6월에, 그리고 그에 뒤이어 터져나온 노동조합들의 대투쟁에서. 96년과 97년의 총파업 현장에서. 2024년 겨울의 내란 저지 투쟁의 현장에서. 민중은 자신의 삶을 훼손하고 억압하는 체제에 맞서 언제고 봉기를 조직할 수 있다.
하지만 체제는 언제나 역사적 봉기를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체제의 안에 품어낸다. 87년 6월,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혁명가 이한열의 죽음은, 민주화와 체제의 보수, 정상화를 위한 희생으로 해석된다. 그렇기에 어느 날 부터 열사의 죽음은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것이 되었으리라. 4·3봉기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국가 폭력에 의한 학살의 희생자들에 의한 추념으로만 이야기된다. 봉기를 주도하고, 대중을 조직하고, 빨치산이 되어 무장투쟁을 진행한 남조선로동당에 대한 이야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니, 그들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4·3에 이념 프레임을 씌우려는 시도”로 격하된다.
4.19도, 부마항쟁도, 탄핵광장도, 모두 “비정상적이었던 체제”에 저항하여 “체제를 정상화”하기 위해 투쟁하다 희생된 사건으로 해석한다. 이 해석 안에서 봉기의 목적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 아니라, 고장 난 체제를 수리하는 것이 된다.
체제는 이 무수한 민중의 봉기를 민주주의 발전도상으로 편입한다. 그들은 민중을 “시민”으로 만들고, 나아가 “국민”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된 봉기는 체제를 위협할 힘을 잃고, 오히려 체제를 강화하는데 복무하게 된다. 얼마 전, 의회제도정치는 개헌을 시도했다. 그 개헌에는 “5·18 정신의 계승”이 한국 체제의 근간 중 하나로 명시될 것이었다 한다. 어찌보면, 5월 광주를 기반으로 정치세력화에 임해온 민주 세력의 승리선언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또한 어찌보면, 5월의 광주마저 체제에 포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일 수도 있겠다.
체제가 봉기를 기념하는 까닭은 봉기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다. 봉기를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과거로 만들기 위해서다. 추모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을 현재에 묶어둔다면, 기념은 그 싸움을 이미 끝난 역사로 정리한다.
5월의 광주가 체제의 안에 포섭된다면, 그 광주는 여전히 해방광주가 될 수 있는가. 그 광주는 여전히 체제를 겨냥할 수 있는가.
장면 셋. 전라남도는 2028년 G20 개최를 추진하면서, 전남·광주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와 정신을 간직한 상징적 공간이라는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봉기는 팔려나간다. 5월 광주는 이제 기념을 넘어 상징이 되고, 지역의 브랜드가 된다. 그리고 그 브랜드로서, G20의 개최를 추진하는 동력으로 팔려간다. 5월의 금남로에서 투쟁을 조직해내던 열사들이 어찌보면 혐오했을, 국제 자본주의의 한복판에 광주를 올려놓는 방식으로.
이는 5월의 광주가 역사가 되고, 그 정신이 대한민국 체제의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어 발생한 일이다. 5월의 광주가 여전히 해방광주라면, 광주의 정신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위한 저항이 아니라, 국가의 폭력에 맞선 대중의 자기해방으로 읽힌다면, 그 이름으로 세계 자본주의의 정상들을 불러낼 수 있겠는가. 대중의 자기해방이라는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 안전하게 포장된 민주주의를 부려놓는 것이야말로 봉기의 체제내화가 무엇인지를 가장 명징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현대의 체제는, 이 자본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체제는, 사용한 적 없는 봉기를 판다. 기념식장에서 호출되고, 헌법 전문에 수록되고, 국제행사 유치 제안서에 등장하지만, 정작 오늘의 국가와 자본을 향해서는 사용되지 않는 봉기. 해방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나 해방에는 쓰이지 않는 봉기. 체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5월의 광주는, 그들이 무장해제하여 만들어내고자 하는 광주는 이러한 광주인 것이다.
그렇기에 묻는다. 국가가 기념하는, 그리고 때로는 G20을 유치하기 위해 호출되는 5월의 광주는 여전히 해방광주인가. 헌법의 전문이 되고, 지역의 경쟁력이 되고, 민주주의의 브랜드가 되어 팔리는 5월은 여전히 체제에 위협적인가. 아니면 그것은 이제 해방광주가 아니라, 해방광주의 외피를 두른 체제 선전물인가.
그래서는 안된다. 우리는 5월의 광주를 다시금 저들에게서 빼앗아 해방광주로 만들어야 한다. 광주봉기를 민주주의 정신이라는 추상적 단어로 전용하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 그 항쟁을 인권과 평화의 무해한 상징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 국가가 감히 5월 광주의 이름으로 세계의 지배자들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광주시민들이 제기했던 질문을 다시 꺼내야 한다. 5월의 광주는 국가가 인민에게 총부리를 돌렸을 때, 인민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방어하며 해방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사건이다. 그 투쟁의 언어를 다시 사용할 수 없다면, 5월의 광주는 더 이상 해방광주가 아니다. 그것은 체제가 진열한 미사용 봉기일 뿐이다.
우리 시대의 광주
1980년 5월의 광주는 승리했다. 해방광주가 공수부대의 총탄에 붉게 스러졌다 해도, 광주는 승리했다. 혹은 승리로 기억하도록 이야기된다. 80년 광주는 80년대 남한 운동세력의 기저의식을 구성했고, 그 운동세력이 결국 만들어낸 87테제가 현대 남한 국가의 기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5월 광주의 관념적 요구였던 신군부의 퇴진과 민주주의의 확보는 이루어졌다. 광주 인민들이 석방을 요구했던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다. 광주폭동은 광주민주항쟁이 되었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기소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5월 광주를 승리한 광주로 기억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승리한 광주를 기억하라 말하는 동시에 해방광주는 애써 기억에서 지워낸다. 대대로, 왕이 된 반란지도자는 그 누구보다 반란의 싹을 잘라내는 데에 열심이었으니까. 이제는 체제의 지배자가 된 과거의 운동권들은 5월 광주를 반석삼아 자기 체제를 세워내었으니까. 지배자가, 그들까지 포함한 지배자가 없더라도 사회는 언제라도 세워지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한 해방광주는, 그 해방광주를 세우기 위해 인민대중과 함께 투쟁하고 함께 피흘려왔던 혁명가들은 이제 승리자들에게 위험한 기억이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5월의 광주를 기억하여서는 안된다. 혹은, 기억하는 것에서 멈추어서서는 안된다. 우리에게 광주는 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총탄 아래에서 “희생당한 광주”여서는 안된다. 광주의 인민대중은 무고하게 살아가다 “희생당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폭력에 맞서 싸우다 산화해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광주는 “승리한 광주”여서는 안된다. 80년 5월의 해방광주가 보여주었던 지배자 없는 사회, 필요에 따른 분배, 자발적 협동에 근거한 사회는 아직 이루어진 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방광주를 사유해야 하는 것은, 1980년의 아름다웠던 그날을 떠올리기 위함이 아니라, 2026년 우리의 생활공간을 80년 5월의 광주로 만들어내기 위함이어야 한다. 광주는, 승리와 해방의 그날까지 우리와 함께 투쟁하고 있는, 우리의 삶을 해방하는 광주여야 한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