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비평을 시작합니다.

<아나키스트 연대>는 22년 4월부터 대중문화를 아나키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개시합니다.

대대로, 아나키스트들은 문화적 활동을 사랑했습니다. 문화가 가지고 있는 개별성과 창조성이야말로, 아나키즘이 혐오하는 획일적이고 권위적이며 관료적인 국가권력에 반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피억압대중의 자유로운 문화향유야 말로 혁명의 원동력이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지배는 창조적인 문화 발전의 열정과의 피할 수 없는 모순이다. 창조적인 문화 발전은 사회활동의 새로운 형태 · 새로운 분야를 추구하며 늘 탐구되어진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 · 다양성 · 모든 사안의 자유로운 변화는, 문화 발전과는 정반대의 엄격한 형태 · 사문화된 규칙 · 사회생활의 모든 발현의 강제적 억압과 같은 정도로 극히 필요한 것이다. (...) 하지만 몇 번씩이나 되뇌어져 온 것처럼, 국가는 어떠한 문화도 창조하지 않는다. 국가는 고정관념으로 안전하게 지탱되며, 모든 것을 현상 그대로 보존하려 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상 모든 혁명의 이유였던 것이다.”(『아나키즘적 조합주의 : 이론과 실천』, 루돌프 로커)

그리고 부르주아 혁명이 완전히 승리로 돌아가고, 기술의 발전이 생산력을 꽃피워낸 오늘, 인민들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문화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자본을, 여유를, 지적 기반을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글을 게이밍 노트북으로 쓰고 있습니다. 뭐, 선전작업을 하기 위해 CPU와 그래픽카드가 좋은 노트북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산 노트북이고, 실제로 그것을 위해 쓰기도 하지만, 제일 자주 여는 어플리케이션이 스팀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 집에는 콘솔게임기도 2개가 있습니다. 집에서 여유롭게 TV로 할 수 있는 PS와 단지 젤다 야숨이 너무 하고 싶어서 구매한 닌텐도 스위치가 있어요. 인류 역사의 다른 어느 시점에, 임노동자 한 명이 ‘노동’을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오락’만을 위한 기기를 사용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뮤지컬도 좋아하기는 하는데, 그 공연까지 자주 찾아다니기에는 티켓값 감당이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미술이건 음악이건, 예술이라는 것은 언제나 지배계급이 향유해오던 것이었지, 저 같은 노동자 나부랭이가 마음 편히 보러다니던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플란데런의 우유배달노동자 네로가 괜히 루벤스의 그림을 한 번 보려고 고생하다 안트베르펀 대성당에서 얼어죽은 것이 아니니까요.

저는 애니메이션을 봅니다. 그 잘나신 전공투 전사 미야자키 하야오 동지의 지브리 스튜디오 산 생태주의 프로파간다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귀엽고 동글동글한 미소녀들 20명이 나와 꺄르르꺄르르 호에에에에에하는 애니메이션도 충분히 재밌게 봐요. 아. 심지어 동인지도 봅니다.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는 동인지를 쓰고 있을지도 몰라요.

저는 여행을 즐깁니다. 저는 미식을 사랑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러 다닙니다. 저는 책을 읽습니다. 저는 웹툰을 봅니다. 저는 축구 · 야구 · 농구 · 배구에 심지어 미식축구까지 프로스포츠를 즐깁니다. 솔직히 바르셀로나에 놀러갔을 때 CNT 본부 건물 보러간 건 기억이 안나도 캄 노우 직관은 또렷이 기억해요. Visca Barça!

하지만, 우리가 이토록이나 자유롭게 문화를 누리고 있는 오늘, 우리의 문화는 자유로울까요. <아나키스트 연대>는 이전에 “타인의 노동에 대한 착취에 의존하는 삶은 자유로운 삶이 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타인의 노동에 대한 착취에 의존하는 문화 역시 자유로운 문화가 아닐 겁니다.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고, 문화마저 “산업”이 되어 창조경제가 되어버린 오늘입니다. 이러한 시대에서 우리에게 문화란, 최소한 우리가 향유한다고 말하는 대중문화란 결국 누군가의 창조성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노동의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게임은 결국 IT노동자들의 야근의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보는 전시실은 미화노동자, 시설관리노동자, 학예노동자, 기획노동자 등의 노동의 총합입니다. 쿄애니 본사에 불이 난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테러리즘이자 창작자들에 대한 폭력임과 동시에,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경험한 대규모 산재사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대중문화”는 결국 문화예술노동자들의 노동 착취로 굴러가는 문화예술 산업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대중문화를 향유한다는 것 자체가 문화의 자본화에 복무하는 것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문화의 향유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안에 살아 숨쉬는 창조의 열정을 놓을 수는 없으니까요. 살기 위한 노동의 한복판에서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뭐라도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재기할 수 없을만큼 망가져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자본에 얽메이지 않는 문화를, 그러니까 대충 인디문화나, 조금 더 나아가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같은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옳은 걸까요? 뭐, 그럴 수는 있습니다. 최소한 그러한 문화를 누리면서 살아가면 내 마음은 편해질 겁니다. 저는 20년간 한국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팬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잠실야구장에서 술에 취한 채로 “두산의 승리를 위하여, 오늘도 힘차게 달려라. 나가자 싸우자 승리의 베어스 두산의 승리를 위하여”라고 노래를 부르던 중, 엊그제 보았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중앙대분회장님의 울먹이는 투쟁사가 떠오르는 겁니다. 그렇게 탈덕을 하게 됐고, 아직도 아픔으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심정으로 프로야구팀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인 야구팀에서 함께 건강한 스포츠를 했다면, 이런 아픔은 없었겠지요. 아니, 더 나아가서, 노동계급의 강인한 투쟁사를 담은, 그러니까 <파업전야> 같은 것을 보았다면, 내 가슴은 한층 더 혁명으로 다가가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러한 문화만이 존재하는 삶이, 우리가 원하는 해방된 삶은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혁명’은 계몽된 소수 선진노동계급이 주도하고 지도하는 혁명이 아닙니다. 사회의 지도부를 갈아치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혁명’은, ‘해방’은 평범하게 숨쉬고 노동하며 살아가는 노동대중이 스스로 자기 삶을 구성해나가는 사회입니다. 누구도 지도하지 않고, 누구도 옳고 그르지 않은, 모두가 자신의 개별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해방세상에서의 문화는 몇몇 힙스터들이 애정할 수 있는 인디문화도, 선진노동계급의 계급의식으로 가득찬 사회주의 리얼리즘도 아닙니다. 그저 오늘의 노동대중이 즐기고 누리는 대중문화가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스페인 혁명에서 투쟁했던 대중들은 <랜드 앤 프리덤>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100년 뒤 조선 땅 투쟁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부르는 뽕짝의 박자 안에서 숨쉬고 있는 것처렴요.

무엇보다, 다시 말하지만,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노동대중 스스로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노동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노동대중의 새로운 사회 건설 과업에 함께하고, 그 사회의 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바라보는 활동가로서, 우리는 노동대중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노동대중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서 기쁨을 느끼는지는, 크로포트킨이건 바쿠닌이건 마흐노건 마르크스건 레닌이건 트로츠키건, 그들의 책과 말들 속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의 대중들이 바라보는 것, 오늘의 대중들의 무의식에서 기쁨을 주는 것. 오늘의 대중문화를 관조할 때에야, 우리는 현상으로서의 대중을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웹툰 작가이자 게임 평론가인 원사운드는, 그가 <기어즈 오브 워 2>를 플레이한 것에 대하여 그린 만화를 다음과 같은 대사로 마무리합니다.

“오락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거지!”

그렇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켄 로치 감독의 영화를 평론해봤자, 무슨 재미가 있을까요. 엠마 골드만 동지가 말하였듯, “내가 춤추지 않으면, 그것은 혁명이 아닙니다.” 우리가 글을 쓰면서도, 그 글을 읽는 여러분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혁명을 이야기하는 글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이렇게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다음 주 이 시간, <하츠 오브 아이언 4 : 플레이어에서 모더로> 편으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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