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제로부터 시작하는 엘데의 왕

“그래서 엘든링이 뭔데?”

출시일만 기다리면서 이 질문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양심이 머리에 남은 모근에 비례하는 미야자키는 2019년 인터뷰에서 “세계 자체를 정의하는 신비로운 개념”이라면서 감질나게 만들기만 하고, 비밀을 배때지안에 숨기고 혼자 음미하는 조지RR마틴옹도 대답을 해 주지 않은채 2월 25일이 왔다.

관짝 뚜껑 열고 튀어나온건 다크소울3에서도 해 봤으니까 별 거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시작하자마자 튀어나온 이불 덮어쓰고 희끄무리한 거미처럼 생긴 놈한테 순식간에 처발렸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지하를 지나 문짝을 여니 진짜 프롬겜 맞나 싶은 림그레이브의 풍경이 펼쳐졌다. 이 녹색 가득한 초원이 실화냐? 틈새의땅은 진짜 전설이다…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바로 골-든나무. 삐까뻔쩍 하게 서 있는 것을 놓칠 수가 없다. 아주 모든 게 황금이다. 전작에 회복지점이었던 화톳불마저 이번엔 골-든은총이고, 나오자마자 내 뚝배기를 깨는 필드보스는 타고 있는 말까지 황금으로 떡칠을 했다.

이렇게 큰 나무랑 어울리는 세계관은 북구신화 말고는 생각하기 어렵고,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냄새가 솔솔 난다.

첫 엘데의 왕이라는 고드프리는 어깨에 후긴과 무닌을 달고 다니는 오딘 마냥 사자를 하나 짊어지고 다니고, 그와 관계가 있는 호라 루는 처음 컷신에 등장할때 오딘이 위그드라실에 9일동안 매달려 있었던 것 처럼 피투성이가 되서 나무에 매달려있다.

나아가 파쇄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는 고드윈의 죽음과, 이를 되살려보겠다고 라단한테 꼴박한 말레니아는 발드르를 살리기 위해 헬에게 간 헤르모드의 여정을 떠올리게 하고, 황금나무를 불태울 수 있다는 불과 거인은 수르트 말고는 다른 모티브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

아울러 마틴옹의 자취가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본인을 운명에서 해방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인물이라던가, 평생 어린아이의 몸으로 살아야 해서 겉으로는 제일 약해보이는 반신의 영역은 가장 요새화가 철저하며 강력한 병력들로 무장되어 있다던가.

하지만 프롬소프트 게임답게 이런 걸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이 게임은 사진 한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 잊을 수 없는 팔란의 추억이여!

세계의 질서라는 “엘든 링”(황금률이라고도 하는 듯 하다)이 붕괴한 상태에서 시작되는 틈새의 땅 모험의 목적은 바로 이 엘든 링을 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엔딩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여러개의 엔딩 중에서 이 엘든 링을 수복하는 결말이 가장 가짓수가 많지만, 결과는 팔레트 스왑 엔딩이다. 오히려 통계를 보면 황금률을 수복하는 대신 포기하는 것을 선택지를 고른 유저가 더 많을 정도로 엘든 링을 수복하지 않는 결말이 더 성의 있는 엔딩 컷신을 보여준다. 이는 북구신화의 특징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본다. 북구신화에서 라그나로크가 필연이듯 틈새의 땅에서 엘든 링의 붕괴도 이 세계관에서는 필연인 것이다.

미야자키는 이런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다크소울에서 태초의 불도 결국 꺼지는 결말이었으니까. 다만, 도입부부터 시대의 망조가 세상이 개막장이라는 사실을 금방 각인시키는 다크소울3와는 달리 푸른 땅에서 황금나무가 반겨주는 시작에서 이런 결말로 오는 흐름은 다른 느낌이다.

288시간동안 게임을 재미있게 즐겼다. 처음에는 1500시간을 쏟아부은 스카이림을 드디어 놓아줘도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맛이 있기 때문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1회차에서는 뛰어난 게임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게임의 발매가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AAA라고 부르는 거대자본 타이틀들이 죄다 맛이 간 것처럼 보여온 요즘 이런 소식은 가뭄의 단비와 같으니까. 미야자키님 그럼 이제 게이머들 안심하고 모니터 안에 인생에만 전념하면 되죠?

그건 어림도 없다. 게임업계가 가진 문제는 해소되기는 커녕 날이 갈수록 더 커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게임 만드는데 인건비가 가장 많이 들어간다는 점은 워낙 유명해서 딱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 물론 장비값이야 요 몇 년간 지속되어온 반도체 부족 현상때문에 부담이 좀 커지기는 했겠지만, 언리얼 엔진 같은 걸 원자재라고 하기에는 어색하지 않은가.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인건비 절감을 하고 싶은 회사에게는 “아웃소싱”이라는 마법의 주문이 있다. 하지만 게임업계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물론 할 수 있는 시도는 전부 다 해왔다. 과거에 가치있는 업무로 여겨졌던 QA는 이제 외주 업무로 밀려나서 찬밥신세가 된지 오래니까.

그래도 이런 노력에는 한계점이 있다. 미국에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콜센터를 방갈로르의 인력회사에 외주를 맡긴다고 하면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데 최소한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하는 인텔리 직장인 게임회사가 어느날 미국을 떠나 인도로 간다고 하면? 아마 여론이 뒤집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업계에서 “크런치”라고 불리는 혹사 문제는 국적을 불문하고 문제다. 포괄임금제나 연봉제를 통해 반복되는 야근에서 생길 수 있는 초과근무 수당 문제를 봉쇄하고, 프로젝트마다 갱신되는 계약고용으로 실무자들의 물갈이 관행을 업계에 정착시켰다.

하지만 오를 임금은 오른다. 장기간 저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은 지속되어왔는데, 헐리웃 블록버스터 싸대기 치는 AAA 게임의 스케일 경쟁은 게임 업계의 인력난을 가중화시켰다. 중요한 것은 게임업계는 평범한 인력을 원하는 아니다. 돈을 최대한 덜 받고 쥐어짤 수 있는 인력을 원하는 것이다.

게임업계가 무지개색 깃발을 내걸고 여성과 성소수자들에게 두 팔을 활짝 벌린 이유는 간단하다, 싸게 부려먹을 수 있어서이다. SNS에서 리버럴 반동들이 꿈꾸는 환상을 끼워맞춘 “미국”이라는 가상의 나라와는 다르게, 현실의 미합중국의 민낯을 액티비전-블리자드가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작년 11월, 개판이 된 블리자드를 수습하기 위해 중역으로 승진한 젠 오닐은 3달만에 회사를 떠났다. 기업 위계질서 피라미드의 꼭데기에 올라가다시피 했음에도 성희롱에 시달렸으며, 같은 직위에 있던 남성인 마이크 이바라만큼의 연봉을 받지도 못했다. 자신의 승진이 여성이자, 동성애자이자, 유색인 이민자로서 병풍취급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 그가 사표를 내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중역이 이런데 말단 직원이 어떤 일을 겪을지는 뻔하지 않는가?

북미/유럽의 게임업계가 이렇게 개판이 난 상태에서 일본 회사인 프롬소프트가 보여준 결과물에 정치적 올바름과 페미니즘만 보면 척수반사로 경기를 일으키는 씹덕들의 행복회로가 기자의 수레바퀴 돌듯 돌아가지만 탄내만 풀풀 날 뿐이다. 프롬소프트웨어가 명작을 만들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은 아직 자국민 착취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수치상으로는 높지만 있으나 마나 한 어용조직이고, 젊은이들은 국가와 자본의 만행 앞에 무력한 나머지 포기를 생존전략으로 삼은 무기력한 세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일본도 세계 경제에서 따로 노는 것이 아니고, 이미 게임 QA등의 업무는 일본에서 중국으로 아웃소싱 되어가고 있다. 일본 게임계가 서양과 비슷한 난관에 봉착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런 현실을 보고 엘든링의 엔딩 선택지를 다시 돌아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현 체제인 황금률의 수복, 보존보다 선호되는 결말을 현재와 엮어서 생각하는 것은 억지이지만, 모든 것이 불타는 미친불 엔딩을 정사라며 자조하는 유저들의 모습은 확실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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