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이 사회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갤러리다.

축구라는 스포츠는 내 마음을 항상 달궈놓는 스포츠다. 내가 볼을 차는 것은 잘 못해도, 화면 안 축구선수들이 공을 차는 것을 보고 "축구선수 맞나?"며 소리를 지르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축구라는 스포츠가 가지고 있는 마성의 매력일 것이다. 나는 내 삶의 8할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팀을 응원했고, 진심을 다해 이 팀을 지지했다. 심지어 내가 아직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 내가 옹알이를 하던 때에 사진을 보면 2할 정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니 말은 다 했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응원했으면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머리가 굳은 뒤에는, 내가 마치 맨체스터 지역에 사는 팬인 것인 양 지역 라이벌인 리즈 유나이티드를 혐오하고,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를 증발시켰으면 하고, 리버풀이라는 팀의 종말을 원하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명예 맨체스터 시민이지 않겠는가. 맨체스터 이즈 레드.

이것만 봐도 알겠지만, 명예 맨체스터 시민인 아나키스트 연대 회원 모 씨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역 라이벌인 리즈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을 정말 싫어하며, 이는 딱히 진짜 맨체스터 현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오히려 거기가 원류라면 원류일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보았을 때, 우리는 축구라는 스포츠가 어떻게 태동했는지 알 수 있다. 축구란, 기본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대립과 분열, 갈등의 스포츠였다.

축구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혹은 대표한다고 생각되는 팀이 다른 지역, 특히 갈등하던 역사가 있는 지역과 경기를 할 때 그 어떤 경우보다도 뜨거웠다. 대표적으로 상기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즈 유나이티드 간의 라이벌 관계다. 장미전쟁 때부터 이어지던 랭커셔와 요크셔 간의 갈등이 '로즈 더비'로 직접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뿐이겠는가. 너무나도 대표적이고 유명한 지역 갈등이 거대한 더비로 나타난 사례들은 많다. 아라곤과 카스티야 지역의 갈등이 축구로 점화되는 '엘 클라시코', 중세 유럽 시절부터 상업적 라이벌 관계였던 지역 간의 갈등이 축구로 점화된 '더 클라시케르'가 대표적이다.

생각해보자. 감히 우리 요크 가문이 왕이 되는 것을 막아선 랭커스터 가문의 땅, 랭커셔 지역의 축구팀이 우리 홈구장에 발을 들이 내미는 것을 요크셔 지방의 충성스러운 신민들로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당연히 죽여 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우리 여왕폐하께서 삼도천을 건너 지옥으로 가버리고 마셨을 때, 장례식을 위해서 런던지역 축구경기들을 중지시킨 와중에 저 멀리 북부 맨체스터 지역에서 벌어지는 로즈 더비를 중지시킨 것 아니겠는가. 암만 우리 여왕폐하께서 하늘로 가버리셨다고 해도, 맨체스터와 리즈 지역 팬들이 경찰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서로 두드려 패고 싶어 할 것이란 확신이 있던 것이었다.

비단 지역갈등 뿐만이 아니다. 계급갈등도 축구가 강렬해지는 매우 중요한 기제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AS로마와 SS라치오 간의 경기를 칭하는 '데르비 델라 카피탈레' (수도 더비)다. 두 팀의 대립구도는 극명하다. AS로마가 북부 자본가들을 때려잡기 위해 남부 노동자들이 단결해 만든 클럽인 반면, SS라치오의 경우 무솔리니 시절, 파시스트 장군의 위세를 등에 업고 성장한 국가와 자본가들의 클럽이기 때문이다. 갈등과 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고, 실제로 이 더비에서는 양 팀의 서포터들이 치고 박고하는 일이 늘 나타난다. 사망자가 나타나는 것은 덤이고.

잉글랜드와 유럽 이야기를 지금까지 줄줄이 읊어봤다. 이제 한 번 우리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한국의 이야기 말이다. 거두절미하고, K리그에서 혐오, 대립, 갈등이란 터부시될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렇다. 이를테면 대구FC의 관중들이 원정을 온 광주FC 관중들에게 지역드립을 친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결과가 나올까. 너무 자명하다. 대구FC 구단은 그랜절을 박으며 도게자를 박을 것이고, 언론에는 "K리그, 이대로 좋은가"라는 제목과 함께 수많은 성토여론들이 나올 것이다. 비단 전라도와 경상도 간의 지역감정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속에서 지역드립이란 그런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우리는 모두 같은 나라 같은 국민인데! 같은 소리 말이다.

이건 대한민국의 현대사의 특수성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동의하지 못할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는데,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국가의 통합, 국론의 통합, 국민의 통합을 외친다. 근현대사 속 모든 군사 독재자들은, 혹은 민주주의를 표방한 독재자들은 집권과 권력유지를 위해 지역과 지방간의 분열을 추동해왔으며, 이는 분명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걸로 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소위 '민주화'라는 것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지역 갈등은 집권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지 않았던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반대기제로서 '통합'에 대한 움직임도 매우 거세지기 시작했다. 아니, 오히려 그 어떤 때보다도 이에 대한 열기는 거세졌다. 이는 특히나 '민주화'에 투신했던 수많은 인사들이 더 이상의 분열과 다툼을 멈추고 화합과 통합의 장으로 나아가자, 고 주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빠르게 사회 속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후, '지역'은 한국 사회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지역'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 이는 곧 군부독재정권의 유산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같이 생각되었다. 겸사겸사 민주주의와 지금의 체제를 훼손하는 것으로 낙인찍히기도 했고.

어디 지역 갈등뿐만 그런가. 세대갈등, 계급갈등, 성별갈등을 그 어떤 존재들보다도 가장 열정적으로 봉합하려 시도하는 것 또한 국가권력이었다. 설령 국가권력이 의도적으로 항상 추동해 나타나는 갈등이 아니라 할지라도, 국가권력은 여성가족부를 설치함으로서, 노동청을 설치함으로서, 공익광고와 세대갈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세대 창조, 혹은 융합으로 대응했다. 그렇게 해서 통합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정상시민'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국론분열을 두려워하고, 통합에 반대하는 것을 혐오스러워하며, 누군가와 싸우고 이를 통해서 결과를 내는 것은 더 이상 비문명적이고 야만적인 것이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스포츠에서의 지역구도, 갈등, 대립이란 것이 성립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광주FC의 홈구장에서 저 대구 유사쪽발이들의 침공을 막아서겠다고 하는 순간 그것은 '죄'가 되는 것이며, 대구에서 전라도 것들을 막아야 한다고 외치는 순간, 그것은 일베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 과정 속에서, 한국 축구라는 것이 제대로 성립될 수가 없고,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발전되는 것은 어렵다. 그렇게 억지로 형성된 통합 속에서, 갈등과 대립이 존재하지 않는 '통합'의 스포츠로서의 축구는 서서히 죽어간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통합'은 국가대표 경기의 흥행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축구는 대립과 경쟁의 스포츠로서 시작된 것이 아닌, 첫 시작점부터가 월드컵에 나가 일제에 맞서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다. 생각을 해보자면 한국 인민들의 최애 축구팀은 무슨 수원삼성이니 FC서울이니 하는 팀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이 아니었던가. 그런 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국론분열을 최대한 회피하고 모든 것을 통합에 힘을 모은 민족주의, 쇼비니즘이라는 기제 속에서 나타날 수 있던 것이 아니었던가.

축구란 스포츠가 그랬듯,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언제나 갈등과 대립의 구도 속에서 발전해오고, 전진해오고, 성장해왔다. 노동자계급 운동은 단 한 번도 우리 사회를 치유하고 통합하며, 사회적 화해를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계급 운동은 항상 자본과 이와 함께하는 국가권력에 맞선 대립과 갈등 속에서 성장했고, 그 속에서 승리와 패배를 겪어왔다. 우리가 세계평화를 바란다고 해서 우리가 세계 축구 올스타 따위를 만들어봐야 재미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세계 축구 올스타 같은 것은 옛날 광고에서 나왔듯, 외계인과 지구를 건 단판승부를 할 때나 결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생각해보자. 이것도 분열과 대립인데? 역시 분열과 대립이야말로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절대 질 것 같지 않는 베스트 일레븐의 팀이 서 있는 사회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유럽 축구의 최고 팀들끼리만 해먹는 슈퍼리그를 격렬히 혐오하고 반대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우리는 그런 어떤 세계최강의 팀을, 우리 동네 축구팀이 짜릿한 역전승으로 죽창을 꽂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더 이상 전국적, 전 세계적인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짓은 그만두자. 지역으로, 현장으로 가 더 날 서게 분열하고 대립하고 싸우고 다투자. 그 다툼의 끝에서 우리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레스터 시티가 세웠던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니까.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 또한 변혁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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